🌀 양자역학과 무아 시리즈 (1) 전자는 어디에 있는가

🌀 양자역학과 무아 시리즈 (1)

전자는 어디에 있는가 – 양자역학과 실체 없는 존재

– 임상 한의학의 관점에서 본 '존재'의 의미

🧘‍♂️ 고전 한의학 이야기만 하다가…

그동안 이 블로그에서는 주로 한의학과 주역, 그리고 동양 전통의학의 구조와 흐름에 대해 이야기해 왔습니다. 그러던 중, 잠깐 양자역학과 무아(無我) 개념에 대해 언급했을 뿐인데, 예상외로 많은 분들이 큰 관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으로, 평소 머릿속에 정리해 두었던 생각들을 조금 더 천천히, 임상에서의 경험과 함께 풀어보고자 합니다.

이 시리즈는 총 3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음과 같은 주제를 다룹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1️⃣ 전통 물리학에서의 ‘존재’란 무엇이었는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물리학에서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것이 어디에 위치하고, 어떤 속성(질량, 속도 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공은 바닥에 있고, 전자는 원자핵을 돌고, 나무는 정원에 ‘있는’ 것이지요.

이는 실체론적인 존재관입니다.
즉, "무언가가 실체로 존재해야 한다"는 믿음입니다.

한의학 역시 오랜 시간 동안 몸과 마음을 이해하는 데 있어 고정된 실체보다는 변화와 흐름을 중시하는 관점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2️⃣ 전자는 ‘있다’기보단, ‘있을 확률’

양자역학은 이 실체론적 존재관을 근본부터 흔듭니다.

전자는 더 이상 고정된 점이 아닙니다. 그 대신, 어디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형태로만 존재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걸 수학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파동함수(wave function)**입니다.

“전자는 여기 있다.” → ❌
“전자는 여기에 있을 확률이 높다.” → ✅

이와 비슷한 개념은 한의학의 장부(臟腑) 이론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임상에서 간(肝)이라 할 때, 우리는 실제 간이라는 장기를 직접 보는 것이 아니라, 기억력의 저하, 생리주기의 변화, 가슴 답답함, 눈의 피로 등 간과 관련된 증상들의 패턴을 통해 "간기울결(肝氣鬱結)"을 진단합니다. 실체가 아닌 작용의 경향을 진단하는 것입니다.

3️⃣ 슈뢰딩거의 고양이 – 고정되지 않은 상태란?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은 이 개념을 더 명확히 보여줍니다.

상자 안의 고양이는 관찰하기 전까지는 살아 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닙니다. 두 상태가 동시에 존재하는 중첩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듣기엔 황당하지만, 이것이 현대 물리학이 제시하는 현실입니다.

우리가 환자를 진단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불면증 환자가 찾아왔을 때 우리는 단순히 '수면장애'라는 라벨을 붙이지 않습니다. 그는 심허(心虛)일 수도, 간화상염(肝火上炎)일 수도, 담울(痰鬱)일 수도 있습니다.

즉, 환자는 고정된 병명 하나가 아니라, 여러 병리 상태가 중첩된 가능성 공간 안에 있습니다.
치료는 그 중첩을 하나씩 좁히고 정돈하는 과정입니다.

4️⃣ 불교의 무상·무아와의 철학적 대화

양자역학이 전자의 위치조차 불확정하다고 말하듯, 불교는 오래전부터 ‘실체 없는 자아’의 개념을 말해왔습니다.

무상(無常): 모든 것은 변한다
무아(無我): 고정된 자아는 없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인체 또한, 절대적인 ‘정상’이나 ‘질병’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균형과 불균형 사이의 동적 변화로 봅니다. 이는 무상과 무아의 시각과 매우 유사합니다.

5️⃣ ‘나’는 고정된 실체인가?

전자가 실체가 없고, 고양이조차 열어보기 전에는 상태가 고정되지 않았다면, ‘나’라는 자아는 고정된 실체일까요?

우리는 항상 ‘나’라는 자아를 느끼며 살아가지만, 그것은 감정, 기억, 경험, 심지어 기후에 따라 달라지는 유동적인 흐름입니다.

“오늘은 내가 나 같지 않다.”
“왜 이렇게 짜증이 많지?”

이런 느낌들은 자아조차도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실존적 증거입니다.

한의학적 임상에서는 특히 정신적 질환에 있어, ‘심(心)’과 ‘신(腎)’의 관계를 주목합니다. ‘정신’은 단일 실체가 아니라, 정기(精氣), 기혈(氣血), 오장육부의 균형 속에서 잠시 형성된 상태입니다.

🔚 정리 – 실체 없는 존재는 비허무, 열린 가능성

‘전자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은 단지 입자 하나의 위치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그 질문은 존재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를 되묻는 것입니다.

양자역학과 한의학, 불교는 서로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모두 실체적 존재 대신 관계적 흐름과 상호작용의 패턴에 주목합니다.

실체가 없다는 건, 무의미가 아니라 ‘열린 가능성’입니다.

그것이 바로, 동양의학이 수천 년간 '변화'를 중심에 두고 체계를 구축해온 이유이기도 합니다.

📌 다음 편 예고
‘나’라고 할 만한 내가 없다 – 무아 사상을 다시 보다

다음 글에서는 ‘자아’에 대한 더 깊은 질문으로 넘어갑니다.
우리는 왜 자신을 ‘나’라고 느끼고, 그 ‘나’는 어떻게 구성되며, 어떤 조건 속에서 변화하는지.

불교의 무아, 심리학의 자아 구조, 데카르트 철학, 그리고 임상에서 마주한 자아 붕괴의 순간들을 함께 탐색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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